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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3.04.17 | 영산홍과 진달래 그리고 전설따라.. 1

 

영산홍은 진달래과다보니 진달래 혹은 철쭉과 혼동하는 경우가 많다. 구분법은 잎을 통해 확인이 가능한데, 진달래는 꽃이 잎보다 먼저 피기에 이를 통해 구분할 수 있다. 철쭉의 잎은 끝이 둥글며, 산철쭉은 잎의 끝이 뾰족하고 잎에 잔털이 있다.

철쭉과 마찬가지로 독이 있어 먹으면 안 된다.

학명은 Rhododendron indicum로 인도산 철쭉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하지만 영산홍은 일본이 원산지로 현재의 속명-종명을 적는 이명법을 만들어 낸 위대한 스웨덴의 식물학자 칼 폰 린네가 이명법으로 수많은 동식물의 학명을 만들어 낼 때 당시 인도에서 입수한 자료를 토대로 명명되었기 때문에 인도산 철쭉이라는 의미를 갖게 되었다. 꽃말은 첫사랑.

일본이 원산지이고 일본에서의 이름은 5월에 꽃을 핀다하여 시쯔키(皐月)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신기하게도 이러한 특징과 상관 없는 뜻인 영산홍으로 불린다. 여기에는 재미있는 역사적 유래가 있다. 영산홍은 조선 시대 연산군 또는 그 이전 시기에 일본으로부터 들여온 것으로 추정되는데, 본래 영산홍은 접동새와 진달래 전설에서 유래된 단어로, 피를 토하고 다시 삼킨다는 접동새의 밑 진달래꽃에 피가 떨어져 붉게 되었다는 중국의 전설로 당시 조선 시대에서는 영산홍은 모든 진달래 속을 총칭하는 용어였다. 하지만 어느순간 특정 수종인 스쯔키를 칭하는 용어가 되어렸다.

이러한 속 전체를 부르던 단어가 특정 수종의 단어가된 설로는 과거 연산군이 영산홍을 워낙 좋아하여 무려 1만 그루를 후원에 심으라 전교를 내렸다(실제로 조선왕조 실록에 있는 내용) 연산군이 중종반정으로 폐위되어 일본에서 들여오던 사쯔키가 궁으로 가지 못하고 그대로 호남 해안지역에 하역되었고, 민가에서 재배되며 연산홍이라 불렸다라는 내용을 숙종 시절 실학자 신경준이 쓴 기록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일본에서의 수입은 연산군 이전에 이루어진 것으로 보이나 영산홍이라는 이름을 갖게된 경위는 나름 신빙성이 있는 것 같다.

즉, 일본산 수종인 시쯔키는 한국에서는 중국 진달래속의 이름인 영산홍이라 불리고 세계에서는 인도 철쭉이라 불리고 있는 기구한 운명을 가진 수종이다.(나무위키에서 스크랩)

 

접동새(두견새)는 촉나라의 망제인 두우(杜宇)의 넋이라고 하는 전설이 내려오는 새입니다. 촉나라가 망하고 두우는 다시 촉나라로 돌아가고자 했으나 꿈을 이루지 못하고 죽어 밤마다 이산, 저산 옮겨다니며 귀촉.. 귀촉이라고 울어서 귀촉도라고도 불립니다. 두견새의 울음소리가 귀촉으로 들려서 그런듯 합니다. 두견새는 귀촉도 뿐아니라 자규, 두우, 두백, 망제, 불여귀라고도 불립니다.  교과서에 나오던 이조년의 시

이화에 월백하고 은한이 삼경인제
일지 춘심을 자규야 알랴마는
다정도 병인양하여 잠 못 들어 하노라.    

 

여기에 나오는 자규입니다.

 

원문은

梨花月白三更天 (이화월백삼경천)
啼血聲聲怨杜鵑 (제혈성성원두견) 

진覺多情原是病 (진각다정원시병)
不關人事不成眠 (불관인사불성면) 

 

여기 한문에는 두견으로 나오죠?

 

이 두견새가 울부짖으며 토한 피가 꽃의 뿌리에 떨어지고 꽃잎에 떨어져서 꽃이 붉게 물들어 진달래가 두견화로도 불리게 되었답니다.

 

접동새는  또다른 전설이 있습니다.

 

 

옛날 그 옛날에 평안북도 박천의 진두강가에 누나 하나와 남동생 아홉으로 구성된 10남매가 홀아비와 같이 살고 있었다네요.

어느날 아버지가 계모를 들였는데 이 계모가 포악하여 전처의 자식들을 많이 학대했답니다.

 

그러나 누나가 나이가되어 박천땅의 어느 도령과 혼약을 맺었습니다.

부자인 누나의 약혼자 집에서 누나에게 많은 예물을 보냈는데 이를 시기한 계모가 누나를 농속에 가두고 불을 질렀답니다.

 

동생들이 슬퍼하며 타고 남은 재를 헤치자 재 속에서 새가 한마리 날아 올랐는데 이 새를 후세 사람들이 접동새라고 불렀답니다. 이새가 밤마다 계모의  눈을 피해 남들이 다 자는 야밤에만 날아놔서 남은 동생들을 걱정해서  창가에서 접동 접동 하면서 슬피 울고 갔답니다. 한편 관아에서 이 사실을 알고 계모를 잡아다가 불에 태워 죽였는데 그 재 속에서 나온 새가 까마귀라고 하네요...

접동새의 전설은 는 김소월 시인이 시로도 남겼습니다.

 

 

접동새(김소월)

 

접동
접동
아우래비 접동

진두강 가람가에 살던 누나는
진두강 앞마을에
와서 웁니다

옛날, 우리나라
먼 뒤쪽의
진두강 가람가에 살던 누나는
의붓어미 시샘에 죽었습니다

누나라고 불러보랴
오오 불설워
시새움에 몸이 죽은 우리 누나는
죽어서 접동새가 되었습니다

아웁이나 남아되던 오랩동생을
죽어서도 못잊어 차마 못잊어
야삼경 남 다 자는 밤이 깊으면
이 산 저 산 옮아가며 슬피 웁니다.

 

 

망제 두우에 대하여

 

고대의 촉나라는 지금의 사천성(四川省)에 해당되는 지역으로 사방이 산악으로 둘러싸인 큰 분지이다. 따라서 중원 지역과는 교통이 여의치 않아 고립된 지세에 의지하여 독자적인 문화를 발전시켜왔다.'촉(蜀)'이라는 글자는 누에의 모습에서 유래하였다. 여기에서 짐작할 수 있는 것은 촉나라의 성립이 잠업(蠶業)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리라는 사실이다. 아닌 게 아니라 촉나라를 처음 세운 영웅은 잠총(蠶叢)이라는 누에를 잘 치는 사람이었다. 그는 백성들에게 누에 치는 법을 가르쳐 주었고 황금빛의 좋은 누에를 수천 마리나 길러 매해 정초에 집집마다 한 마리씩 나눠주었는데 그것을 기르면 반드시 크게 번식하였다 한다. 잠총은 이러한 공로로 인해 처음 촉나라의 왕으로 추대되었고 나중에는 신으로 추앙되었다. 그는 세로 눈을 한 기이한 모습이었고 누에 치는 법을 가르치러 시골을 돌아다닐 때 항상 푸른 옷을 입었기에 후세에 청의신(靑衣神)이라고도 불리웠다.

잠총 다음으로는 백관(栢灌)이라는 사람이 임금이 되었고 그 다음은 어부(魚鳧)라는 사람이 임금이 되었다는데 이 두 사람의 행적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려진 바가 없다. 다만 잠총, 백관, 어부 이 세 명의 임금은 각각 수백 세를 살았고 나중에는 신이 되어 죽지 않았다 하니 촉나라의 초기 임금들은 어질고 신성한 자질을 지닌 존재들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들은 왕위를 자식들에게 물려주지 않고 덕있는 사람에게 양보했던 것으로 보아 요(堯) 순(舜)과 같은 중원의 초기 임금들과 비슷한 점이 있다.

세 명의 성군들 다음에 촉의 임금이 된 이는 두우(杜宇)라는 사람이다. 그는 어느날 하늘로부터 내려왔다. 그런데 동시에 강가의 우물에서 리(利)라고 하는 여인이 솟아나와 둘은 부부가 되었다. 백성들은 두우를 곧 네번째 임금으로 맞이하였으니 그가 곧 망제(望帝)이다. 망제가 다스린 지 백 여년쯤 되었을 때였다. 촉나라의 동남쪽 형(荊) 땅에 별령(鱉靈)이라는 사람이 물에 빠져 죽었는데 그 시체를 찾을 수 없었다. 시체는 강물을 거슬러 촉나라까지 흘러와서 소생하였다. 이를 신기하게 여긴 망제는 그를 재상으로 삼았다. 이때 옥산(玉山)이라는 산이 물길을 막아 큰 홍수가 났다. 그것은 마치 요 임금때 중원 전체를 휩쓸었던 대홍수와 같은 재난이었다. 백여 년 동안 잘 다스려왔던 망제도 이러한 사태에는 속수무책이었다. 그는 별령이 물에 익숙했던 사람임을 생각해내고 그로 하여금 옥산을 뚫어 물길을 터놓도록 하였다. 별령이라는 이름이 자라의 혼이라는 뜻 아닌가? 별령은 망제의 명을 받고 홍수를 다스리러 떠났다.

그런데 별령이 떠난 후 망제 두우는 평소 마음에 두었던 별령의 아내를 유혹하였다. 둘은 마침내 그렇고 그런 사이가 되고 알았다. 별령은 숱한 고난 끝에 옥산의 물길을 뚫어 홍수를 진정시켰다. 백성들의 환호성 속에 별령은 개선장군처럼 수도로 귀환하였다. 별령의 위풍당당한 모습을 본 망제는 내심 자신이 한 짓을 생각하고 부끄럽기 짝이 없었다. 별령은 백성들을 위해 저토록 큰 일을 했는데 자신은 신하의 아내와 밀통(密通)이나 하고 있었다니! 부끄러움과 회한(悔恨) 끝에 망제는 큰 공을 세운 별령에게 왕위를 물려주기로 결단을 내렸다. 그리고 나서 그는 서산(西山)에 들어가 숨어 살았다. 그러나 숨어 산다고 해서 자책은 덜하지 않았다. 어느날 홀연 그의 몸은 두견새로 변하였다. 새로 변해 훨훨 날아 부끄러움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던 것일까? 봄에 우는 두견새의 울음소리는 망제의 회한을 대변하듯 구슬펐다. 촉나라의 백성들은 두견새의 울음소리를 들을 때마다 그래도 한때는 명군이었으나 한번 실수로 모든 것을 잃고 만 망제의 신세를 생각하고 슬픔에 잠겼다 한다. 망제의 뒤를 이어 임금이 된 별령은 이후 개명제(開明帝)라고 불리웠고 그의 후손이 대를 이어 12대까지 촉나라를 다스렸다.(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200301290025070518 [동양의 신화](38)촉(蜀)나라의 신화: 잠총(蠶叢)과 두우(杜宇) 에서 스크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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