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산홍은 진달래과다보니 진달래 혹은 철쭉과 혼동하는 경우가 많다. 구분법은 잎을 통해 확인이 가능한데, 진달래는 꽃이 잎보다 먼저 피기에 이를 통해 구분할 수 있다. 철쭉의 잎은 끝이 둥글며, 산철쭉은 잎의 끝이 뾰족하고 잎에 잔털이 있다.

철쭉과 마찬가지로 독이 있어 먹으면 안 된다.

학명은 Rhododendron indicum로 인도산 철쭉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하지만 영산홍은 일본이 원산지로 현재의 속명-종명을 적는 이명법을 만들어 낸 위대한 스웨덴의 식물학자 칼 폰 린네가 이명법으로 수많은 동식물의 학명을 만들어 낼 때 당시 인도에서 입수한 자료를 토대로 명명되었기 때문에 인도산 철쭉이라는 의미를 갖게 되었다. 꽃말은 첫사랑.

일본이 원산지이고 일본에서의 이름은 5월에 꽃을 핀다하여 시쯔키(皐月)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신기하게도 이러한 특징과 상관 없는 뜻인 영산홍으로 불린다. 여기에는 재미있는 역사적 유래가 있다. 영산홍은 조선 시대 연산군 또는 그 이전 시기에 일본으로부터 들여온 것으로 추정되는데, 본래 영산홍은 접동새와 진달래 전설에서 유래된 단어로, 피를 토하고 다시 삼킨다는 접동새의 밑 진달래꽃에 피가 떨어져 붉게 되었다는 중국의 전설로 당시 조선 시대에서는 영산홍은 모든 진달래 속을 총칭하는 용어였다. 하지만 어느순간 특정 수종인 스쯔키를 칭하는 용어가 되어렸다.

이러한 속 전체를 부르던 단어가 특정 수종의 단어가된 설로는 과거 연산군이 영산홍을 워낙 좋아하여 무려 1만 그루를 후원에 심으라 전교를 내렸다(실제로 조선왕조 실록에 있는 내용) 연산군이 중종반정으로 폐위되어 일본에서 들여오던 사쯔키가 궁으로 가지 못하고 그대로 호남 해안지역에 하역되었고, 민가에서 재배되며 연산홍이라 불렸다라는 내용을 숙종 시절 실학자 신경준이 쓴 기록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일본에서의 수입은 연산군 이전에 이루어진 것으로 보이나 영산홍이라는 이름을 갖게된 경위는 나름 신빙성이 있는 것 같다.

즉, 일본산 수종인 시쯔키는 한국에서는 중국 진달래속의 이름인 영산홍이라 불리고 세계에서는 인도 철쭉이라 불리고 있는 기구한 운명을 가진 수종이다.(나무위키에서 스크랩)

 

접동새(두견새)는 촉나라의 망제인 두우(杜宇)의 넋이라고 하는 전설이 내려오는 새입니다. 촉나라가 망하고 두우는 다시 촉나라로 돌아가고자 했으나 꿈을 이루지 못하고 죽어 밤마다 이산, 저산 옮겨다니며 귀촉.. 귀촉이라고 울어서 귀촉도라고도 불립니다. 두견새의 울음소리가 귀촉으로 들려서 그런듯 합니다. 두견새는 귀촉도 뿐아니라 자규, 두우, 두백, 망제, 불여귀라고도 불립니다.  교과서에 나오던 이조년의 시

이화에 월백하고 은한이 삼경인제
일지 춘심을 자규야 알랴마는
다정도 병인양하여 잠 못 들어 하노라.    

 

여기에 나오는 자규입니다.

 

원문은

梨花月白三更天 (이화월백삼경천)
啼血聲聲怨杜鵑 (제혈성성원두견) 

진覺多情原是病 (진각다정원시병)
不關人事不成眠 (불관인사불성면) 

 

여기 한문에는 두견으로 나오죠?

 

이 두견새가 울부짖으며 토한 피가 꽃의 뿌리에 떨어지고 꽃잎에 떨어져서 꽃이 붉게 물들어 진달래가 두견화로도 불리게 되었답니다.

 

접동새는  또다른 전설이 있습니다.

 

 

옛날 그 옛날에 평안북도 박천의 진두강가에 누나 하나와 남동생 아홉으로 구성된 10남매가 홀아비와 같이 살고 있었다네요.

어느날 아버지가 계모를 들였는데 이 계모가 포악하여 전처의 자식들을 많이 학대했답니다.

 

그러나 누나가 나이가되어 박천땅의 어느 도령과 혼약을 맺었습니다.

부자인 누나의 약혼자 집에서 누나에게 많은 예물을 보냈는데 이를 시기한 계모가 누나를 농속에 가두고 불을 질렀답니다.

 

동생들이 슬퍼하며 타고 남은 재를 헤치자 재 속에서 새가 한마리 날아 올랐는데 이 새를 후세 사람들이 접동새라고 불렀답니다. 이새가 밤마다 계모의  눈을 피해 남들이 다 자는 야밤에만 날아놔서 남은 동생들을 걱정해서  창가에서 접동 접동 하면서 슬피 울고 갔답니다. 한편 관아에서 이 사실을 알고 계모를 잡아다가 불에 태워 죽였는데 그 재 속에서 나온 새가 까마귀라고 하네요...

접동새의 전설은 는 김소월 시인이 시로도 남겼습니다.

 

 

접동새(김소월)

 

접동
접동
아우래비 접동

진두강 가람가에 살던 누나는
진두강 앞마을에
와서 웁니다

옛날, 우리나라
먼 뒤쪽의
진두강 가람가에 살던 누나는
의붓어미 시샘에 죽었습니다

누나라고 불러보랴
오오 불설워
시새움에 몸이 죽은 우리 누나는
죽어서 접동새가 되었습니다

아웁이나 남아되던 오랩동생을
죽어서도 못잊어 차마 못잊어
야삼경 남 다 자는 밤이 깊으면
이 산 저 산 옮아가며 슬피 웁니다.

 

 

망제 두우에 대하여

 

고대의 촉나라는 지금의 사천성(四川省)에 해당되는 지역으로 사방이 산악으로 둘러싸인 큰 분지이다. 따라서 중원 지역과는 교통이 여의치 않아 고립된 지세에 의지하여 독자적인 문화를 발전시켜왔다.'촉(蜀)'이라는 글자는 누에의 모습에서 유래하였다. 여기에서 짐작할 수 있는 것은 촉나라의 성립이 잠업(蠶業)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리라는 사실이다. 아닌 게 아니라 촉나라를 처음 세운 영웅은 잠총(蠶叢)이라는 누에를 잘 치는 사람이었다. 그는 백성들에게 누에 치는 법을 가르쳐 주었고 황금빛의 좋은 누에를 수천 마리나 길러 매해 정초에 집집마다 한 마리씩 나눠주었는데 그것을 기르면 반드시 크게 번식하였다 한다. 잠총은 이러한 공로로 인해 처음 촉나라의 왕으로 추대되었고 나중에는 신으로 추앙되었다. 그는 세로 눈을 한 기이한 모습이었고 누에 치는 법을 가르치러 시골을 돌아다닐 때 항상 푸른 옷을 입었기에 후세에 청의신(靑衣神)이라고도 불리웠다.

잠총 다음으로는 백관(栢灌)이라는 사람이 임금이 되었고 그 다음은 어부(魚鳧)라는 사람이 임금이 되었다는데 이 두 사람의 행적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려진 바가 없다. 다만 잠총, 백관, 어부 이 세 명의 임금은 각각 수백 세를 살았고 나중에는 신이 되어 죽지 않았다 하니 촉나라의 초기 임금들은 어질고 신성한 자질을 지닌 존재들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들은 왕위를 자식들에게 물려주지 않고 덕있는 사람에게 양보했던 것으로 보아 요(堯) 순(舜)과 같은 중원의 초기 임금들과 비슷한 점이 있다.

세 명의 성군들 다음에 촉의 임금이 된 이는 두우(杜宇)라는 사람이다. 그는 어느날 하늘로부터 내려왔다. 그런데 동시에 강가의 우물에서 리(利)라고 하는 여인이 솟아나와 둘은 부부가 되었다. 백성들은 두우를 곧 네번째 임금으로 맞이하였으니 그가 곧 망제(望帝)이다. 망제가 다스린 지 백 여년쯤 되었을 때였다. 촉나라의 동남쪽 형(荊) 땅에 별령(鱉靈)이라는 사람이 물에 빠져 죽었는데 그 시체를 찾을 수 없었다. 시체는 강물을 거슬러 촉나라까지 흘러와서 소생하였다. 이를 신기하게 여긴 망제는 그를 재상으로 삼았다. 이때 옥산(玉山)이라는 산이 물길을 막아 큰 홍수가 났다. 그것은 마치 요 임금때 중원 전체를 휩쓸었던 대홍수와 같은 재난이었다. 백여 년 동안 잘 다스려왔던 망제도 이러한 사태에는 속수무책이었다. 그는 별령이 물에 익숙했던 사람임을 생각해내고 그로 하여금 옥산을 뚫어 물길을 터놓도록 하였다. 별령이라는 이름이 자라의 혼이라는 뜻 아닌가? 별령은 망제의 명을 받고 홍수를 다스리러 떠났다.

그런데 별령이 떠난 후 망제 두우는 평소 마음에 두었던 별령의 아내를 유혹하였다. 둘은 마침내 그렇고 그런 사이가 되고 알았다. 별령은 숱한 고난 끝에 옥산의 물길을 뚫어 홍수를 진정시켰다. 백성들의 환호성 속에 별령은 개선장군처럼 수도로 귀환하였다. 별령의 위풍당당한 모습을 본 망제는 내심 자신이 한 짓을 생각하고 부끄럽기 짝이 없었다. 별령은 백성들을 위해 저토록 큰 일을 했는데 자신은 신하의 아내와 밀통(密通)이나 하고 있었다니! 부끄러움과 회한(悔恨) 끝에 망제는 큰 공을 세운 별령에게 왕위를 물려주기로 결단을 내렸다. 그리고 나서 그는 서산(西山)에 들어가 숨어 살았다. 그러나 숨어 산다고 해서 자책은 덜하지 않았다. 어느날 홀연 그의 몸은 두견새로 변하였다. 새로 변해 훨훨 날아 부끄러움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던 것일까? 봄에 우는 두견새의 울음소리는 망제의 회한을 대변하듯 구슬펐다. 촉나라의 백성들은 두견새의 울음소리를 들을 때마다 그래도 한때는 명군이었으나 한번 실수로 모든 것을 잃고 만 망제의 신세를 생각하고 슬픔에 잠겼다 한다. 망제의 뒤를 이어 임금이 된 별령은 이후 개명제(開明帝)라고 불리웠고 그의 후손이 대를 이어 12대까지 촉나라를 다스렸다.(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200301290025070518 [동양의 신화](38)촉(蜀)나라의 신화: 잠총(蠶叢)과 두우(杜宇) 에서 스크랩)

 

2016년 9월 16일 푸른 수목원

PHOTO | 2022. 10. 28. 16:10
Posted by hbirds

항동철길이 사라질지도 모른다고 하기에 가고 싶었던 곳...

 

하늘이 흐려서 마냥 아쉬웠던 날이지만 꽃과 나무에 한껏 취했던 날...

 

그리고 항동철길.. 와보길 잘했다..

 

 











































 

 

2016년 10월 1일 관곡지의 연꽃

PHOTO | 2022. 10. 28. 16:09
Posted by hbirds

..연휴 첫날... 흐린 날씨에도 불구하고 카메라 주섬주섬 챙겨서 시흥에 있는 관곡지에 다녀왔습니다.

 

날씨가 맑았다면 좋았겠지만 10월인데도 예쁜 연꽃이 아직 많이 남아 있더군요..

 

 









 

 

2016년 9월 17일 경복궁 나들이...

LIFE IS... | 2022. 10. 28. 16:07
Posted by hbirds

 

오랜만에 파란 하늘이 너무 고와서 경복궁을 오랜만에 다녀왔습니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선남 선녀들이 보여서 셔터를 마구 눌렀지만 초상권이 걱정되어 꼬마 사진사님 사진을 제외하고는 포스팅에서 제외하려고 노력했습니다.

 

 































 

 

 

 

 

2016. 11. 12 안양유원지... 가을이 지다

PHOTO | 2022. 10. 28. 16:04
Posted by hbirds







































 

 

2016년 11월 5일 북촌 & 창덕궁

PHOTO | 2022. 10. 28. 16:01
Posted by hbirds

참 오랜만에 북촌과 창덕궁에 다녀왔었습니다.

 

날씨는 포근했는데 미세먼지가 가득해서 참 아쉬웠습니다.

 

 













































 

 

 

 

 

2014년 5월 17일 부산에서의 하룻밤

LIFE IS... | 2022. 10. 28. 16:00
Posted by hbirds
토요일 일정을 끝내고 찾은 해운대... 아직 이르지만 더운 날씨 때문인지 관광객들이 드문드문 보였습니다. (6월에는 개장을 한다는 소식을 왠지 안양에 와서 옆에 앉은 시내버스 승객에게서 들었습니다 )

 

이건 반대쪽 달맞이 고개쪽 사진입니다. 



장노출로 찍은 바다입니다.  파도의 움직임이 조금 느껴지나요?


10시경 동백섬 산책에 나섰습니다. 

 

동백섬 일주를 다녀오다가 영도대교를 보고 셔터를 놀렀습니다. 삼각대 놓을 곳이 없고 바닥이 

나무로되어서 사람들이 지나갈때마다 흔들리는지라... 그냥 느낌만 보세요..


산책길을 조금 더 가니 더 좋은 뷰포인트가 나오더군요. 역시 상황은 안좋았습니다. 더구나 이번엔 망원으로 찍는 바람에 크게 나오긴 했지만 더 흔들린듯..


산책을 끝내고 웨스틴 조선호텔 앞으로 와서 달과 바다를 한컷 찍었습니다. 밤바다에 비친 달빛이 예뻐서요 ^^


숙소에서 기르는 고양이는 일찌감치 잠이 들어있었습니다.

이 아이의 이름은 백사장입니다. 


셔터 소리에 놀라서 그만 깨어버렸네요.

 

아래 사진은 제가 묵었던 게스트하우스 사진입니다.(하이코리아 유스호스텔)

깨끗하고 친절하고 썩 괜찮은 곳이어서 다시 부산에가면 들러볼 예정입니다.





 

전당합각재헌루정(殿堂閤閣齋軒樓亭)

SCRAP | 2022. 2. 23. 17:31
Posted by hbirds

궁궐에는 수많은 건물들이 있다. 아니 있었다.

경복궁의 경우 지금은 남아 있는 건물이 최근 복원한 것까지 합해도 불과 십 수 채 정도밖에 되지 않지만,

19 세기 후반 한참 때는 건물 수의 합계가 800을 넘었고, 고유한 이름을 갖고 있는 독립 건물만 해도 170채 내외가 되었다.

그러한 건물 이름들은 모두 좋은 뜻의 한자로 되어 있어 한자에 익숙치 못한 오늘날 우리들이 보기에는 그게 그것 같기만 할 뿐, 도무지 어떤 질서를 찾기가 쉽지 않다. 그

러나 한자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면서, 사람 이름에도 항렬자를 쓰던 조선시대 당대의 문화 행태로 볼 때 궁궐 건물들의 이름을 아무렇게나 지었을 리는 없다.

궁궐에는 왕과 왕비로부터 왕실 가족, 대소 관원, 군인, 내시, 궁녀, 무수리, 노복에 이르기까지 여러 계층의 수많은 사람들이 기거하고, 활동하였다.

그 여러 사람들의 활동공간으로서 각각 걸맞는 건물들이 할당되었고, 그 건물들에는 그 주인의 신분에 따라 이름도 달리 붙여졌다. 그러한 건물들, 좀더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건물 주인의 신분에 따라 건물 이름에 붙는 끝글자들의 서열을 정리해 보면 대체로 ‘전당합각재헌루정(殿堂閤閣齋軒樓亭)’이 된다.

‘전(殿)’은 왕과 왕비, 혹은 전 왕비, 곧 왕의 어머니나 할머니가 공식적인 활동공간으로 쓰는 건물에만 붙었다.

‘당(堂)’은 전에 비해서 규모는 떨어지지 않으나, 격은 한 단계 낮은 건물이다. 왕과 왕비 등이 당에 기거할 수는 있으나, 그 이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비록 세자나 영의정이라 할지라도, 전에는 기거하지 못하였다.

‘합(閤)’이나 ‘각(閣)’은 지위 면에는 물론 규모 면에서도 전이나 당보다는 떨어진다. 전이나 당의 부속 건물일 수도 있고 독립된 건물일 수도 있다. 이층 건물일 경우 이층을 누(樓)라 하는 데 대해서 일층을 각이라 한다.

‘재(齋)’는 숙식 등 평상 주거용으로 쓰거나, 혹은 주요 인물이 조용하게 지낼 목적으로 지은 건물이다. ‘헌(軒)’은 대청 마루나, 대청 마루가 발달되어 있는 집을 가리키는 경우가 많다.

헌은 공무적 기능을 가졌거나 아니면 일상적 주거 공간으로 주로 쓰였다.

‘누(樓)’는 지면에서 사람 키 높이 정도 떨어져 바닥이 마루로 되어 있는 집이다. 누는 주요 건물의 일부로서 누마루방 형태이거나, 이층 건물의 이층, 혹은 정자처럼 작은 독립 건물로 되어 있다.

‘정(亭)’은 흔히 정자라고 하는 것으로, 경관이 좋은 곳에 있어 휴식이나 연회 공간으로 사용하는 작은 집이다.

이렇듯 ‘전당합각재헌루정’은 엄격한 것은 아니지만 대체적으로 규모가 큰 것으로부터 작은 것으로 가는 순서요,

공식 행사를 치르는 것으로부터 일상 주거용으로, 다시 비일상적이며 특별한 용도로, 휴식공간으로 이어지는 순이다. 종합해서 이야기하자면 ‘전당합각재헌루정’은 그 순서가 건물들의 품격 순이며, 위계 질서라고 할 수 있다.

이 질서는 비단 궁궐에서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사찰이나 성균관 및 향교, 또는 일반 민가에서도 관철된다.

이를테면 사찰에서 부처님을 모신 건물들은 ‘전’자가 붙는 데 비해 조사당(祖師堂)처럼 사람을 모신 건물에는 대체로 ‘당’자가 붙는다.

성균관이나 향교에서도 공자의 위패를 모신 건물은 대성전(大成殿)이요,

유생들이 모여서 강학하는 건물은 명륜당(明倫堂)이다. 사

가에서는 절대로 건물 이름에 ‘전’자를 붙일 수 없다.

아무리 높아도 ‘당’이다.

이런 질서를 알면 건물의 지위가 보인다.

                               (https://blog.daum.net/woolees7/15019345에서 퍼왔습니다..  ㅜㅜ)

 

전당합각재헌루정(殿堂閤閣齋軒樓亭

[전당합각재헌루정(殿堂閤閣齋軒樓亭)] 궁궐에는 수많은 건물들이 있다. 아니 있었다. 경복궁의 경우 지금은 남아 있는 건물이 최근 복원한 것까지 합해도 불과 십 수 채 정도밖에 되지 않지만,

blog.daum.net

 

세부적으로 보면

 

전 (殿)

가장급이 높은 건물로 왕이나 왕비, 대비등 궁에서 가장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건물.

예) 정전(근정전,명정전..) 이나 왕의 집무실(사정전) 그리고 왕와 왕비의 침소(강녕전,교태전,통명전..), 대비의 침소(자경전)

전하~ 라는 표현에 나오는 전..

 

 

당 (堂)

전에 비해 한단계 낮은 등급의 건물이고 크기는 전과 비슷하다.

왕이나 왕비가 주로 사용하는 건물에는 붙이지 않는다.

세자가 머무르는 동궁같은 곳.

예) 자선당

 

합 (閤)

전이나 당의 부속건물에 많이 붙임.

 

각 (閣)

합과 비슷한 규모.

예) 규장각. 보신각

 

재 (齋)

왕실 가족이 사는건물. 생활건물 또는 독서공간으로 사용

예) 낙선재

 

헌 (軒)

재와 비슷한 규모이고 대청마루가 있음. 공무적인 기능을 가진 공간으로 사용. 지방관아를 동헌 이라고 했던것과 비슷

예) 정관헌,

 

루 (樓)

지면이 바닥에서 한길정도 높이로 높인. 마루로 되어있는 건물.

이건물이 2층일때 일층은 각. 이층은 루 라고 부름 (예 창덕궁 후원의 주합루)

예) 경회루

 

정 (亭)

경치 좋은곳에서 휴식이나 연회를 위한 공간. 연못.개울 근처에 만듬. 자를 생각하면 됨

예) 향원정, 망향정

(https://m.blog.naver.com/afg93/220881932699에서 발췌)

 

전당합각재헌루정-殿堂閤閣齋軒樓亭

전당합각재헌루정-殿堂閤閣齋軒樓亭 : 궁궐 각 건물의 구분 조선 왕궁의 건물에는 각각 이름이 붙어있는데,...

blog.naver.com

 

 
커플끼리 오붓하게 놀러갔을 때 기념 사진을 찍는 것은 필수 코스다. 특히 여자의 경우 최대한 예쁘게, 모델같은 사진을 남기려 심혈을 기울인다.

이때 남자친구가 새로운 포즈를 제안해주는 것은 어떨까? 늘 똑같은 브이(V)나 꽃받침 포즈가 아닌 정말 모델다운 자세로 말이다.

사진 전문 온라인 미디어 디지털 포토그래피 스쿨(digital photography school)에서는 최근 모델 뺨치게 사진 찍을 수 있는 21가지 포즈를 소개했다.

잘 참고해뒀다가 좀 더 색다른 사진을 찍고자 하는 여자친구에게 알려주면 어떨까.
 
1. 어깨 너머로 카메라 바라보기

2. 양 손으로 머리 또는 얼굴 주변 감싸기

3. 난간에 비스듬히 걸치기

4. 무릎 붙이고 턱받침 하기. 사진은 위쪽에서 촬영한다.

5. 바닥에 누워 머리 기대기

 

6. 잔디 등 야외에서 엎드려 찍기. 팔과 다리는 자연스럽게 움직인다.


7. 바닥에 눕기(상체샷)

8. 바닥에 눕기(전신샷)

9. 바닥에 엎드리기. 잔디, 침대, 해변 등에서 활용하기 좋은 자세로 낮은 각도에서 촬영해야 한다.

10. 무릎 굽혀 한 팔 걸치기

 

 

11. 굽힌 무릎 감싸안기


12. 고개 젖히고 다리 뻗기. 바디라인을 돋보여 실루엣 촬영에 적합하다.

13. 한 손으로 머리 넘기기

14. 바지 뒷주머니에 손 집어넣기

15. 상체를 앞으로 살짝 기울이기

 

16. 머리 위로 손 들어올리기. 몸의 곡선을 강조해 여성미를 드러내기 좋다.


17. 한 손으로 허리 짚기. 가장 기본적인 자세로 손이나 다리 모양의 간단한 변화만으로 다른 느낌을 줄 수 있다.

18. 벽에 기대 서기

19. 라인이 드러나는 의상을 착용했을 경우 에스(S)라인 강조하기

20. 한 손 머리 위로 올리고 고개 살짝 젖히기

21. 뒷모습 찍기. 목이나 어깨 라인이 드러난 옷을 입었을 때 여성스럽고 우아한 분위기를 강조할 수 있다.

ⓒdigital-photography-school.com

* 출처 : 인사이트 http://m.insight.co.kr/view.php?ArtNo=4810&ReplyY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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