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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성어의 유래」 침어낙안(沈魚落雁) 폐월수화(閉月羞花)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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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성어의 유래」 침어낙안(沈魚落雁) 폐월수화(閉月羞花)

hbirds 2025. 4. 9. 15:46

서시(西施)-[침어(浸魚)]

춘추시대 말기에 월(越)나라에 도화(桃花)처럼 예쁜 얼굴을 타고난 서시라는 여자가 있었다, 이름은 이광(夷光)입니다. 어릴 때부터 얼굴이 예쁘고 천성도 고와서 인근 고을사람들에게 흠모의 대상이 되었다고 합니다.

하루는 서시가 강가에서 빨래를 하고 있는데, 그녀의 아름다운 모습에 헤엄치던 물고기들이 도취되어 헤엄치는 것을 잊어버리고 강바닥으로 가라앉았다고 합니다.그래서 사람들은 서시를 침어(浸魚)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왕소군(王昭君)-[낙안(落雁)]


 한나라 때 미천하고 가난한 집안에서 출생했습니다. 때마침 한나라 원제는 전국에서 후궁을 모집했는데요, 왕소군도 18세의 나이에 후궁으로 선발되어 황궁에 들어갑니다. 그러나 황제가 수많은 후궁을 다 볼 수는 없었기 때문에 화공(모연수)에게 그림을 그려서 바치게 했다고 합니다. 그러자 많은 후궁들이 화공에게 예쁘게 그려달라고 뇌물을 바쳤는데요, 왕소군은 집안 형편이 어려워 아무것도 바치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화공은 왕소군을 평범하게 그린다음 큰 점까지 하나 찍었고, 당연히 그녀는 황제의 눈에 들지 못하고 5년의 세월을 보냅니다.

어느 날 흉노족의 족장 호한야 선우(왕의호칭)가 공주에게 장가들기를 청원하고 황제는 두 나라의 유대관계를 생각해서 마지못해 혼인을 허락하게 되었는데요, 혼인을 시키기 전에 한나라 황실의 위엄을 보이기 위해 후궁들을 불러와 연회를 베풀게 됩니다. 호한야는 그 연회에서 절색의 미인을 발견하고 황제에게 공주대신 후궁 중에 한 사람을 선택하게 해달라고 간청해서 황제의 허락을 받아 냅니다. 호한야가 선택한 후궁을 본 황제도 그녀의 아름다움에 넋이 나갔으나, 이미 때는 늦었습니다.
 
 원제는 연회가 끝난 후 급히 돌아가서 궁녀들의 초상화를 다시 대조해 보았다. 왕소군의 그림이 본래의 모습과는 너무 다른 것을 발견한 원제는 그림을 속여 그린 모연수에 대한 분노가 치밀어 올라 진상을 철저하게 조사토록 명령했다. 모연수는 결국 황제를 기만한 죄로 참수되었다

황제는 혼수 준비가 미비함을 이유로 3일간 기다리라고 하고 그녀에게 
‘소군’
이라는 칭호를 내리고 3일 밤낮을 함께하고 아쉬운 작별을 합니다.

그녀는 머나먼 이국땅 흉노로 떠나는 것을 슬퍼하면서 말위에 앉은 채 비파(금:琴)로 이별곡을 연주했는데요, 마침 
날아가던 기러기가 그 모습에 넋이 나가 날개 짓을 하는 것을 잊어버려 그만 땅에 떨어졌다고 합니다. 그래서 왕소군을 낙안(落雁)이라는 칭호를 얻었다.
 
 
3.초선(貂蟬)-[폐월(閉月)]
초선은 삼국시대인 동한 말년 왕윤 집안의 가수였습니다. 그녀 또한 주인인 왕윤의 미인계에 이용되었습니다. 왕윤은 동한왕조를 찬탈하려는 동탁을 죽이는데 초선을 이용하기로 합니다.

먼저 초선을 동탁의 양아들인 여포에게 보여 결혼을 약속하게 한 다음 양부인 동탁의 눈에 들게 합니다. 호색하기로 둘째가라하면 서러워 할 두 사람은 양부와 양자의 연을 맺고 왕조를 쥐락펴락했는데요,
 이 둘의 사이를 갈라놓는 반간계의 비수로 초선을 이용한 것입니다. 동탁은 초선에게 마음을 빼앗겨 어쩔 줄을 모르는 사이에 초선은 여포를 만나 동탁 때문에 괴롭다는 이야기하게 됩니다. 여포는 자신의 혼인 상대를 농락하려는 동탁을 칼로 찌른 후 도망쳤고 둘 사이는 더욱 멀어지게 됩니다.
왕윤은 이를 기회로 삼아 여포에게 동탁을 제거하라고 꼬드겨 양부인 동탁을 죽이게 합니다
 
초선의 마음은 여포도 동탁도 아닌 왕윤에게 가 있었습니다. 초선은 왕윤의 계략이 성공한 후에 달밤에 후원에서 향을 피워놓고 왕윤이 무사하기를 달에게 기원하고 있었는데, 그때 구름이 달을 가리는 것을 본 왕윤이 ‘너무나도 아름다운 초선의 미모에 달도 구름 사이로 숨어버렸구나’라고 하여 폐월(閉月)이라 합니다。
 

 

4.양옥환(양귀비,楊貴妃)-[수화(羞花)]
 당나라 현종은 사랑하던 무혜비를 잃고 시름에 빠져 있었습니다. 후궁으로 3천명이 되는 미녀가 있었으나, 현종의 마음에 차는 여인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 때 자신의 열여덟 번째 아들의 아내인 수왕비가 예쁘다는 소문을 듣고 자신의 술자리로 불러냅니다. 수왕비는 미모뿐만 아니라 음악, 무용에도 빼어난 재주가 있었는데요, 술자리에서 현종이 작곡한 ‘예상우의곡’의 악보를 보고 즉석에서 이 곡에 맞추어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었다고 합니다. 빼어난 지성미에 반한 현종은 중신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아들의 부인을 빼앗아 태진궁을 지어 살게 하고 귀비로 책봉했습니다.

성군이었던 현종은 양귀비를 만난 후 완전히 변하여 정사를 돌보지 않고 오직 양귀비와 사랑 놀음에 빠졌으며, 양귀비의 친족들이 정사를 농단하여 당 왕조의 정치는 부패일로를 걷게 되었다고 합니다.
양귀비는 어느 날 현종과 요즈음 골프와 비슷한 ‘골구’라는 놀이를 하던 중에 공이 꽃 사이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양귀비는 공을 찾다가 ‘함수화’라는 꽃을 건드렸는데, 그 꽃이 꽃잎을 말아 올리는 것을 보고 현종이 ‘귀비의 아름다움에 꽃이 부끄러워 꽃잎을 말아 올렸다’고 해서 수화(羞花)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사실 함수화는 건드리면 꽃잎을 말아 올리는 꽃이라고 하는 군요. 양귀비는 원래 고아였다고 합니다. 양씨 집안에 양녀로 들어갔습니다. 천애고아였던 양귀비가 왕자의 비가 되고, 사실상 황후와 같은 절대 권력을 누린 것은 그녀가 빼어난 미모는 물론 지성미를 겸비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재색을 겸비했던 그녀도 권력에 너무 취했던 것일까요. 안록산의 난으로 38세 젊은 나이에 자결하여 생을 마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