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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DRAMA

SWING GIRLS

hbirds 2021. 11. 19. 15:20
음악은 그저 귀로 듣는것이라고만 알았던 적이 있다.
오케스트라가 만드는 음악은 그저 부드러운 소음일 뿐이고 어렵고 난해하며
수면제 대용으로나 쓰일뿐이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신기하게 생긴 악기들을 다루는 사람들이 서커스처럼 보이기도 했다.
 
스윙걸스에 나오는 그들처럼 나도 그랬었다.
무료한 학창시절, 그저 심심풀이 정도는 될 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감정도 밖에 없었다.
물론, 그때도 음악이 싫었던 건 아니었다.
중학교때부터 매일밤 12시에 나오던 영화음악을 거의 하루도 빼지않고 챙겨듣고
카세트 테이프가 달려있는 라디오는 언제나 좋아하는 노래가 나오면 녹을을 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었다.
음악은 늘 삶의 한 부분이었지만 나는 단지 음악을 소비하는 소비자일뿐이었다.
 
그러던 상황은 내가 악기를 잡으면서 180도 바뀌게 되었다.
스윙걸스들이 그러했듯이 처음에 소리내기 까지 걸린 그 초조하고 짜증나던 시간들...
(옆에서 같이 시작한 동료들의 악기에서 바람새는 소리 대신에 뭔가 방귀소리 비슷한 소리가 날때 느끼던 불타오를 듯한 질투심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참고로 악기가 클수록 소리내긴 쉽다 ^^;)
 
그리고 내 악기에서 처음으로 '소리'가 나던 순간의 감격....
피스톤과 입술의 움직임으로 계명을 하나씩 배워가는 즐거움...
'스윙걸스' 영화를 보는 내내 그녀들의 미소에서 그당시 내모습을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영화에도 나왔듯이, 악기를 연주하고 나서 느낀 최고의 충격적인 경험은 '합주'였다.
각자 소리내기 및 계명을 연습히고 처음 받은 악보는 애국가.
지금 생각하면 제3호른이라는 파트로서 당연하다고 생각되지만 앞에 놓여있는 악보는 전혀 애국가 같지 않았다.
내가 알고 있는 애국가와는 멜로디도 리듬도 전혀 다른 이상한곡에는 '애국가' 호른 제3파트라고 씌어 있었다. 아, 애국가라고 불리울 만한 대목이 아예 없는건 아니었다.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요부분은 내가 알고 있던 그 멜로디였다. 어찌나 반갑던지..
 
어쨋거나 악기라곤 완전 생초보였던 우리들은 음계와 박자를 맞추느라 몇일동안 땀을 뻘뻘흘려가며 연습에 연습을 거듭해야했다. 불쌍한건 다른 학생들이었는데 말이 연습이지 수십명이 가까스로 소리를 내는정도의 실력으로 하는 연습이란게 소음과 다를바가 없다는건 자명한 일이었고 우리는 학교내에서 소음을 유발하는 천덕구러기 신세로 전락해 가고 있었다.(점심, 저녁시간 도시락먹고 졸려서 자고싶은 사람도, 친구들하고 이런저런 얘기도 하고 싶었을텐데 음악실에서 들려오는 소음 때문에 얼마나 짜증이 났을까....)
당시에는 그런것을 신경쓸 겨를이 없었던것 같다... 점심시간 1시간, 저녁시간 1시간 하루에 두시간씩 주어지는 연습시간이 너무 짧았기에 도시락도 5분이내에 먹어야 할정도였으니...
 
 
그러던 어느날, 지휘자 였던 선배가 모두를 자리에 앉히고 첫 합주가 시작되었다.
지휘봉이 허공을 가르고 애국가 간주의 첫소절이 시작되는 순간, 누가 시킨것도 아닌데 두소절쯤 지나고 연주가 멈췄다. 다들 깜짝놀란 표정으로...그 난잡하고 의미없어 보이던 소음의 집합이었던 우리의 소리가... 음악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순간, 가슴이 두근거리면서 피스를 물고있던 입술이 터져나오는 웃음으로 일그러졌다.
주위를 돌아보니 그건 나 뿐만이 아니었다....
 
그날 일기장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애국가 연습 시작- 애국가가 이렇게 멋있는 곡이었던가?'
 
 
 
 
스윙걸스라는 영화를 보는 내내 나는 고등학교시절 음악실로 돌아가있었다.
 
갑작스런 전학으로 몇달간 준비해온 연주회에 참석하지 못하고 뒤돌아서야 했던 나로서는
그들의 마지막 연주회 모습이 어지나 부럽던지....